어제 저녁 쯤 집에 도착했을때 방에 새로생긴 조그만한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내 눈을 공격하였다.
‘아, 맞다. 창문 새로 생겼지.’
요즘은 저 창문을 보면 당황스럽다. 지금도 익숙하지 않다는 증거겠지. 어쩐지 방이 왜 이렇게 추운가했다. 창문을 열어 놓아서 그런거였군. 괜한 짜증으로 소리나게 창문을 닫았다. 집이 단독주택 이여서 다행이지 만약 아파트였으면 주인한테 바로 신고가 들어왔을 것이다.
시계는 9시를 가리키고 있다. 날씨가 화창한 걸 보면 아침인가. 오늘따라 일찍 일어나 상쾌한 주말이지만 별로 기분이 좋지않다. 왜냐하면 지옥같은 시험기간 이니까. 이 단어는 언제 들어도 팔에 소름이 돋게 만든다. 성적이 상위권이였다면 '시험기간? 하루하루가 공부여서 괜찮아.' 막 이러면서 허세를 부렸겠지만 현실은 시궁창이 따로없다. 잘 나오면 70점이 고작이고, 30점까지 맞아 아빠한테 잔소리라는 잔소리를 들었었다. 생각하기도 싫지만 잔소리를 점수만큼의 시간으로 들었다면 끔찍 했을 거다. 반대로 옆집에 사시는 동갑이웃님은 주말을 제외한 모든 날이 공부인 걸로 알고있다. 학교에 있을 때 가끔씩 녀석을 우연히 보는데 항상 책상에 앉아있었다. 그때부터 녀석은 주변 남자애들이랑 확실히 다르단 걸 알았다. 성격이 차갑다보니 친구관계도 좋지는 않은 거 같다. 학교에서 성적이 중요해도 같이 얘기 할 수있는 친구가 더 중요하다. 공부는 친구랑 같이 하면서 모르는 정보를 교환 할 수있다. 같이 등교하고 같이 밥 먹고 같이 얘기하고 수업시간에 떠들다 같이 벌을 받아도 웃음이 나오는 친구가 있다는게 학교의 유일한 장점이다.
이불정리를 하고있을 때 익숙한 벨소리가 들려왔다. 양손에 들려있는 이불을 내려놓은 뒤, 핸드폰을 가져왔다.
“여보세요?”
「선희야~」
아,미연이구나.
“아침부터 웬일이야?”
「10시 쯤에 윤아랑 도서관에서 공부하기로 했는데 너도 같이 안 갈래?」
도서관이 공부가 잘 되게 보이지만 결국 딴 짓만 하게 되는 곳이라고는 말 못하겠다. 오늘 약속도 없으니 책이라도 읽을 겸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갈게.”
「그럼 10시까지 늘 가던 도서관에 와.」
“알았어.”
전화가 끊기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늘 가던 도서관이라니. 독자들이 오해할만한 말을 하였다. 늘 가던 도서관은 맞다. 독서나 공부를 목적으로 가는 것이 아닐 뿐. 도서관은 와이파이가 잘 터져서 자신도 모르게 잉여짓을 하게 된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여서 성적이 이 모양이다. 그래서 도서관은 왠만하면 안 가려 했는데 집에서 혼자 공부하기가 뻘쭘해서 그렇다.
준비를 다 마치고 꼭 필요한 물건 중에 빠진 것이 없는지 확인하였다. 핸드폰은 가져가면 잉여짓을 하게 되겠지만 누군가에게 납치를 당하거나 내가 사고를 당할 수 있으니 일단은 챙겨야겠지. 지갑은 내 배를 채워줄 점심을 위해. 교과서와 요점정리 종이는 도서관에 온 이유를 제대로 발휘하기 위해. 이만하면 될 거같아 가방지퍼를 닫는다.
문을 열려던 순간 옆쪽에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려 손잡이를 잡고만 있었다. 뭐지, 내가 알기엔 부모님은 어디 가신 걸로 아는데. 누가 놀러온건가? 아니, 내가 왜 이런 걸 생각 하는거야. 쓸데없는 생각을 하다 밖으로 나온사람은 간 건지 조용해졌다. 이상하다. 그 녀석 근처에 부모님외의 또래 남자라던가 다른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조별숙제는 빼고말이다. 아, 또 이 놈의 호기심. 잠시 다른 생각만 하면 이런다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 녀석이라도 친구 한 명 없는 게 이상하다. 어릴때는 엄청 많았는데.
“선희쨔응~”
도서관에 도착했을 쯤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렸다. 긴 생머리에 청바지가 잘 어울리지만 은근히 일어를 쓰는 저 아이는 아까 도서관을 같이가자고 전화를 한 미연이다. 중학생 때부터 알게 되었는데 겉보기엔 평범하게 생겨도 사실은 엄청난 덕후다. 새로나온 만화라던가 애니메이션들을 마스터하는 건 기본이고, 방에 가보면 포스터는 없지만 피규어들과 만화책들이 산처럼 쌓여있다. 대표적으로 초록 양갈래머리의 미소녀가 가장 많았다. 뭐라고 했지. 노래 부르는 프로그램이라고 했나? 하여튼 그런 것들을 알게 된 후로 이렇게 덕질을 하게 되었다고 미연이 동생한테 들었다. 덕분에 동생도 덕이 되었고 나도 강제적으로 보라는 협박을 받는 중이다. 그래도 외모는 괜찮아서 부정적인 시선은 받지 않는다. 얼굴만 보고 다가오는 남자들을 몇몇 봤었는데 모두 미연이가 덕이라는 사실에 뒷걸음질 하였다. 하여간에 이 놈의 외모지상주의.
“먼저 와 있었네?”
“내가 1빠로 와 있더라고. 윤아랑 같이 안 왔어?”
윤아랑 내가 만날 일이 있다고 생각 하는건가. 윤아네 집과 우리집은 정반대라 만날 일이 전혀 없다. 그걸 벌써 까먹은 건지 정말 궁금하듯이 물어본다.
“그런가봐. 오는 내내 보질 못했는데.”
“그럼 먼저 들어 가 있을... 어, 저기 최권열 아니야?”
그 녀석이 보인다는 말에 고개를 돌리자마자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녀석도 당황한건지 움직이던 발을 멈추었다. 잠깐만. 그럼 아까 녀석 집에 나간 사람이 쟤였어? 제발 아니기를 빌고싶다.
“최권열, 여긴 웬일?”
“뭔 소리야, 네가 나오라고 했잖아.”
대화를 듣던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녀석이 왜 여기있는지 알게 되었다. 덕분에 내 손은 미연이의 멱살을 잡고 있었다.
“내... ㄴ... 내가 언제 불렀어? 난 네 번호도 모른다고!”
“네 동생 폰에 있지 않냐?”
내 말에 찔린건지 움찔하였다. 예상대로 맞았군. 아마 동생을 시켜서 번호를 얻었을 것이다. 안 봐도 속이 다 보인다, 이미연. 어쨌뜬 다 준비 해놓은 녀석을 그냥 보낼 수 없으니 같이 공부하기로 하였다. 그때 윤아가 온 건 굿타이밍 인건가.
도서관에 오는 사람들 중에 3가지로 나뉜다. 처음부터 끝까지 공부만 하고가는 A형, 적당히 놀다가 공부하는 B형, 도서관은 놀이터라고 생각하면서 잉여짓을 하는 C형. 그 외 잉여짓은 아니지만 도서관 책만 읽고가거나 잠깐 들렀다가 가는 건 D형이라고 구분된다. 뭐,내가 멋대로 지어낸 거지만. 미연이와 윤아는 B+형에 가깝다. B형이라 하기엔 열심히하고 A형이라 하기엔 좀 논다고 본다. 최권열은 A형이라 생각된다. 집에서 뭘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주말 중에 12시간은 공부일 것이다. 도서관에 온 것도 공부때문이니 A형으로 확정. 나는 B-형이다. 공부는 하지만 노는 시간이 더 많으므로 B-. 이렇게 구분 해놓고보니 내가 제일 공부를 안 한다. 그래서 성적이 개판이였던가. 이제부터라도 정신잡고 해야겠다.
「음료수 콜?」
「ㅇㅇ.」
아까 한 결심은 음료수로 인해 2분만에 무너졌다. 하하, 이 놈의 당 중독. 특히 음료수랑 주스. 매점으로 가기위해 지갑을 꺼내려고 하자 옆자리에 앉은 녀석의 진지한 모습이 보인다. 정말 열심히 하네. 공부가 습관이 되면 다 저럴까. 정말 진지하게 내 미래를 위해서 녀석에게 공부하는 법 좀 알려달라고 말해봐야 겠다.
“아, 맞다. 선희야.”
“왜?”
하필이면 구석에 붙어있는 알갱이를 먹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나에게 미연이가 말을 건다. 뭔가 분위기가 영 심상치 않다. 가만히 있기로 유명한 윤아도 피식 웃었고.
“내가 왜 최권열 불렀는지 알아?”
“계속 몰라도 상관없지?”
“저번주에 남자애들이 최권열하고 얘기하는 걸 들었거든.”
잠깐.걔가 애들이랑 대화를 했다고? 녀석 주변에 사람이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내 의문점을 곱게 무시하고 자기 말만 하는 미연이의 얘기에 알갱이를 먹으려는 나의 힘찬 손짓이 멈추었다.
「야, 최권열.」
「왜?」
「너 우리학교 여자애들 중에 그나마 낫다고 생각하는 애 있냐?」
「글쎄, 생각해본 적 없는데.」
「에이~ 그러지말고. 우리 학교가 그나마 예쁜 애들이 많기로 유명하잖아.」
「... ... 굳이 따지자면...」
“그게 나라고?”
“맞아! 그래서 최권열이 너한테 관심있는 거같아서 부른거야.”
“...”
미연이가 그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녀석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라고 음료수를 주었을 것이다. 그 작은 응원을 하기 싫어진 건 참 오랜만이다. 아직 알갱이가 많이 남은 코코팜을 쓰레기통에 던지고 휴게실을 빠져 나왔다. 먼저 간다는 말을 하면서 말이다. 뒤에서 들리는 애들의 목소리는 씹어 버린다. 당장이라도 도서관에 있는 가방을 챙겨 집으로 달려갔을 것이다. 하지만 중간고사가 내 앞길을 막는다. 현실을 깨닫고 천천히 도서관으로 걸어간다.
그 녀석이 공부하고 있는 곳으로 갔을 때 녀석은 없었다. 책상에 필기도구들이 있는 걸 보면 도서관을 나간 건 아닌가보다. 그럼 어디 간거지.
“왜 거기 멍하니 서 있어.”
“으악!”
내 작은비명에 주변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 향하였다. 나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언제부터 거기 있었어?”
“방금.”
이라는 말을 하고 자기 자리에 앉았다. 아무것도 안 들고 있는 걸 보니 화장실을 다녀온 거 같다. 저 녀석 손은 씻었겠지? 나도 자리에 앉아 녀석을 보았다. 오자마자 연필을 들고 공부라니. 우등생들을 보면 정말 신기하다. 어떻게 몇시간동안 같은 자리에 앉아 손목만 움직일까. 그러고보니 1시간 이상을 같은자리에 앉지말라는 괴담이 있었는데 뭐가 안 좋다고 했더라.
“너는 공부 안 하냐.”
“남이사, 하든 말든.”
“가뜩이나 성적... 아니다.”
“뭐야, 말을 왜 하다말아?”
“그닥 쓸데없는 말 같아서.”
“그래도 말을 했으면 끝까지 해야지. 궁금하잖아.”
“들으면 성질 낼 거면서.”
이미 녀석이 무슨 말을 할 지 알고 있었다. 그래도 반전이란 게 있을 거같아 물어보는 건데 반전이 없는 게 반전이다. 아참, 이왕 말 꺼낸 거 성적 올리는 비법 좀 알려달라 해야겠다.
“저기...”
“교과서랑 정리프린트, 필기노트 보면 나온다.”
“...”
“정 걱정되면 EBS라도 보던가.”
“나 뭐 말할 지 꺼내지도 않았거든.”
“네가 나한테 비법 가르쳐 달란 게 한 두번이야?”
그러니까 중학교 때 4번 정도가 끝인 걸로 알고있다. 결국 한 두번은 아니네. 하하...
“적어도 노트필기는 했잖아.”
“뭐, 그렇지...”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넌 공부를 안 해서 좋은 성적이 안 나오는 거같아.”
웬일이야, 좋은 말을 하고. 그러고 보니 전에 보던 최권열과 다른 느낌이 든다. 마치 도와주려는 것처럼 말이다. 우등생의 말은 예상적중 일테니 한번 공부에 도전 해보기로 하여 의자에 놓여있는 가방을 들었다.
“정말 고마워, 덕분에 집중할 수 있을 거같아. 성적 오르면 한턱 쏠게.”
“성적 오르는 건 네가 노력해서 그런 거야, 쏠 필요까지는”
“최권열, 선희는 어딨어?”
‘저 년을 그냥..’
‘아, 맞다. 창문 새로 생겼지.’
요즘은 저 창문을 보면 당황스럽다. 지금도 익숙하지 않다는 증거겠지. 어쩐지 방이 왜 이렇게 추운가했다. 창문을 열어 놓아서 그런거였군. 괜한 짜증으로 소리나게 창문을 닫았다. 집이 단독주택 이여서 다행이지 만약 아파트였으면 주인한테 바로 신고가 들어왔을 것이다.
시계는 9시를 가리키고 있다. 날씨가 화창한 걸 보면 아침인가. 오늘따라 일찍 일어나 상쾌한 주말이지만 별로 기분이 좋지않다. 왜냐하면 지옥같은 시험기간 이니까. 이 단어는 언제 들어도 팔에 소름이 돋게 만든다. 성적이 상위권이였다면 '시험기간? 하루하루가 공부여서 괜찮아.' 막 이러면서 허세를 부렸겠지만 현실은 시궁창이 따로없다. 잘 나오면 70점이 고작이고, 30점까지 맞아 아빠한테 잔소리라는 잔소리를 들었었다. 생각하기도 싫지만 잔소리를 점수만큼의 시간으로 들었다면 끔찍 했을 거다. 반대로 옆집에 사시는 동갑이웃님은 주말을 제외한 모든 날이 공부인 걸로 알고있다. 학교에 있을 때 가끔씩 녀석을 우연히 보는데 항상 책상에 앉아있었다. 그때부터 녀석은 주변 남자애들이랑 확실히 다르단 걸 알았다. 성격이 차갑다보니 친구관계도 좋지는 않은 거 같다. 학교에서 성적이 중요해도 같이 얘기 할 수있는 친구가 더 중요하다. 공부는 친구랑 같이 하면서 모르는 정보를 교환 할 수있다. 같이 등교하고 같이 밥 먹고 같이 얘기하고 수업시간에 떠들다 같이 벌을 받아도 웃음이 나오는 친구가 있다는게 학교의 유일한 장점이다.
이불정리를 하고있을 때 익숙한 벨소리가 들려왔다. 양손에 들려있는 이불을 내려놓은 뒤, 핸드폰을 가져왔다.
“여보세요?”
「선희야~」
아,미연이구나.
“아침부터 웬일이야?”
「10시 쯤에 윤아랑 도서관에서 공부하기로 했는데 너도 같이 안 갈래?」
도서관이 공부가 잘 되게 보이지만 결국 딴 짓만 하게 되는 곳이라고는 말 못하겠다. 오늘 약속도 없으니 책이라도 읽을 겸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갈게.”
「그럼 10시까지 늘 가던 도서관에 와.」
“알았어.”
전화가 끊기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늘 가던 도서관이라니. 독자들이 오해할만한 말을 하였다. 늘 가던 도서관은 맞다. 독서나 공부를 목적으로 가는 것이 아닐 뿐. 도서관은 와이파이가 잘 터져서 자신도 모르게 잉여짓을 하게 된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여서 성적이 이 모양이다. 그래서 도서관은 왠만하면 안 가려 했는데 집에서 혼자 공부하기가 뻘쭘해서 그렇다.
준비를 다 마치고 꼭 필요한 물건 중에 빠진 것이 없는지 확인하였다. 핸드폰은 가져가면 잉여짓을 하게 되겠지만 누군가에게 납치를 당하거나 내가 사고를 당할 수 있으니 일단은 챙겨야겠지. 지갑은 내 배를 채워줄 점심을 위해. 교과서와 요점정리 종이는 도서관에 온 이유를 제대로 발휘하기 위해. 이만하면 될 거같아 가방지퍼를 닫는다.
문을 열려던 순간 옆쪽에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려 손잡이를 잡고만 있었다. 뭐지, 내가 알기엔 부모님은 어디 가신 걸로 아는데. 누가 놀러온건가? 아니, 내가 왜 이런 걸 생각 하는거야. 쓸데없는 생각을 하다 밖으로 나온사람은 간 건지 조용해졌다. 이상하다. 그 녀석 근처에 부모님외의 또래 남자라던가 다른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조별숙제는 빼고말이다. 아, 또 이 놈의 호기심. 잠시 다른 생각만 하면 이런다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 녀석이라도 친구 한 명 없는 게 이상하다. 어릴때는 엄청 많았는데.
“선희쨔응~”
도서관에 도착했을 쯤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렸다. 긴 생머리에 청바지가 잘 어울리지만 은근히 일어를 쓰는 저 아이는 아까 도서관을 같이가자고 전화를 한 미연이다. 중학생 때부터 알게 되었는데 겉보기엔 평범하게 생겨도 사실은 엄청난 덕후다. 새로나온 만화라던가 애니메이션들을 마스터하는 건 기본이고, 방에 가보면 포스터는 없지만 피규어들과 만화책들이 산처럼 쌓여있다. 대표적으로 초록 양갈래머리의 미소녀가 가장 많았다. 뭐라고 했지. 노래 부르는 프로그램이라고 했나? 하여튼 그런 것들을 알게 된 후로 이렇게 덕질을 하게 되었다고 미연이 동생한테 들었다. 덕분에 동생도 덕이 되었고 나도 강제적으로 보라는 협박을 받는 중이다. 그래도 외모는 괜찮아서 부정적인 시선은 받지 않는다. 얼굴만 보고 다가오는 남자들을 몇몇 봤었는데 모두 미연이가 덕이라는 사실에 뒷걸음질 하였다. 하여간에 이 놈의 외모지상주의.
“먼저 와 있었네?”
“내가 1빠로 와 있더라고. 윤아랑 같이 안 왔어?”
윤아랑 내가 만날 일이 있다고 생각 하는건가. 윤아네 집과 우리집은 정반대라 만날 일이 전혀 없다. 그걸 벌써 까먹은 건지 정말 궁금하듯이 물어본다.
“그런가봐. 오는 내내 보질 못했는데.”
“그럼 먼저 들어 가 있을... 어, 저기 최권열 아니야?”
그 녀석이 보인다는 말에 고개를 돌리자마자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녀석도 당황한건지 움직이던 발을 멈추었다. 잠깐만. 그럼 아까 녀석 집에 나간 사람이 쟤였어? 제발 아니기를 빌고싶다.
“최권열, 여긴 웬일?”
“뭔 소리야, 네가 나오라고 했잖아.”
대화를 듣던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녀석이 왜 여기있는지 알게 되었다. 덕분에 내 손은 미연이의 멱살을 잡고 있었다.
“내... ㄴ... 내가 언제 불렀어? 난 네 번호도 모른다고!”
“네 동생 폰에 있지 않냐?”
내 말에 찔린건지 움찔하였다. 예상대로 맞았군. 아마 동생을 시켜서 번호를 얻었을 것이다. 안 봐도 속이 다 보인다, 이미연. 어쨌뜬 다 준비 해놓은 녀석을 그냥 보낼 수 없으니 같이 공부하기로 하였다. 그때 윤아가 온 건 굿타이밍 인건가.
도서관에 오는 사람들 중에 3가지로 나뉜다. 처음부터 끝까지 공부만 하고가는 A형, 적당히 놀다가 공부하는 B형, 도서관은 놀이터라고 생각하면서 잉여짓을 하는 C형. 그 외 잉여짓은 아니지만 도서관 책만 읽고가거나 잠깐 들렀다가 가는 건 D형이라고 구분된다. 뭐,내가 멋대로 지어낸 거지만. 미연이와 윤아는 B+형에 가깝다. B형이라 하기엔 열심히하고 A형이라 하기엔 좀 논다고 본다. 최권열은 A형이라 생각된다. 집에서 뭘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주말 중에 12시간은 공부일 것이다. 도서관에 온 것도 공부때문이니 A형으로 확정. 나는 B-형이다. 공부는 하지만 노는 시간이 더 많으므로 B-. 이렇게 구분 해놓고보니 내가 제일 공부를 안 한다. 그래서 성적이 개판이였던가. 이제부터라도 정신잡고 해야겠다.
「음료수 콜?」
「ㅇㅇ.」
아까 한 결심은 음료수로 인해 2분만에 무너졌다. 하하, 이 놈의 당 중독. 특히 음료수랑 주스. 매점으로 가기위해 지갑을 꺼내려고 하자 옆자리에 앉은 녀석의 진지한 모습이 보인다. 정말 열심히 하네. 공부가 습관이 되면 다 저럴까. 정말 진지하게 내 미래를 위해서 녀석에게 공부하는 법 좀 알려달라고 말해봐야 겠다.
“아, 맞다. 선희야.”
“왜?”
하필이면 구석에 붙어있는 알갱이를 먹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나에게 미연이가 말을 건다. 뭔가 분위기가 영 심상치 않다. 가만히 있기로 유명한 윤아도 피식 웃었고.
“내가 왜 최권열 불렀는지 알아?”
“계속 몰라도 상관없지?”
“저번주에 남자애들이 최권열하고 얘기하는 걸 들었거든.”
잠깐.걔가 애들이랑 대화를 했다고? 녀석 주변에 사람이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내 의문점을 곱게 무시하고 자기 말만 하는 미연이의 얘기에 알갱이를 먹으려는 나의 힘찬 손짓이 멈추었다.
「야, 최권열.」
「왜?」
「너 우리학교 여자애들 중에 그나마 낫다고 생각하는 애 있냐?」
「글쎄, 생각해본 적 없는데.」
「에이~ 그러지말고. 우리 학교가 그나마 예쁜 애들이 많기로 유명하잖아.」
「... ... 굳이 따지자면...」
“그게 나라고?”
“맞아! 그래서 최권열이 너한테 관심있는 거같아서 부른거야.”
“...”
미연이가 그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녀석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라고 음료수를 주었을 것이다. 그 작은 응원을 하기 싫어진 건 참 오랜만이다. 아직 알갱이가 많이 남은 코코팜을 쓰레기통에 던지고 휴게실을 빠져 나왔다. 먼저 간다는 말을 하면서 말이다. 뒤에서 들리는 애들의 목소리는 씹어 버린다. 당장이라도 도서관에 있는 가방을 챙겨 집으로 달려갔을 것이다. 하지만 중간고사가 내 앞길을 막는다. 현실을 깨닫고 천천히 도서관으로 걸어간다.
그 녀석이 공부하고 있는 곳으로 갔을 때 녀석은 없었다. 책상에 필기도구들이 있는 걸 보면 도서관을 나간 건 아닌가보다. 그럼 어디 간거지.
“왜 거기 멍하니 서 있어.”
“으악!”
내 작은비명에 주변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 향하였다. 나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언제부터 거기 있었어?”
“방금.”
이라는 말을 하고 자기 자리에 앉았다. 아무것도 안 들고 있는 걸 보니 화장실을 다녀온 거 같다. 저 녀석 손은 씻었겠지? 나도 자리에 앉아 녀석을 보았다. 오자마자 연필을 들고 공부라니. 우등생들을 보면 정말 신기하다. 어떻게 몇시간동안 같은 자리에 앉아 손목만 움직일까. 그러고보니 1시간 이상을 같은자리에 앉지말라는 괴담이 있었는데 뭐가 안 좋다고 했더라.
“너는 공부 안 하냐.”
“남이사, 하든 말든.”
“가뜩이나 성적... 아니다.”
“뭐야, 말을 왜 하다말아?”
“그닥 쓸데없는 말 같아서.”
“그래도 말을 했으면 끝까지 해야지. 궁금하잖아.”
“들으면 성질 낼 거면서.”
이미 녀석이 무슨 말을 할 지 알고 있었다. 그래도 반전이란 게 있을 거같아 물어보는 건데 반전이 없는 게 반전이다. 아참, 이왕 말 꺼낸 거 성적 올리는 비법 좀 알려달라 해야겠다.
“저기...”
“교과서랑 정리프린트, 필기노트 보면 나온다.”
“...”
“정 걱정되면 EBS라도 보던가.”
“나 뭐 말할 지 꺼내지도 않았거든.”
“네가 나한테 비법 가르쳐 달란 게 한 두번이야?”
그러니까 중학교 때 4번 정도가 끝인 걸로 알고있다. 결국 한 두번은 아니네. 하하...
“적어도 노트필기는 했잖아.”
“뭐, 그렇지...”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넌 공부를 안 해서 좋은 성적이 안 나오는 거같아.”
웬일이야, 좋은 말을 하고. 그러고 보니 전에 보던 최권열과 다른 느낌이 든다. 마치 도와주려는 것처럼 말이다. 우등생의 말은 예상적중 일테니 한번 공부에 도전 해보기로 하여 의자에 놓여있는 가방을 들었다.
“정말 고마워, 덕분에 집중할 수 있을 거같아. 성적 오르면 한턱 쏠게.”
“성적 오르는 건 네가 노력해서 그런 거야, 쏠 필요까지는”
“최권열, 선희는 어딨어?”
‘저 년을 그냥..’